마지막 수정: 2009-03-05 11:18:19 / songdw

녹색이 항상 녹색은 아니다

윤순진(에너지전환 대표)

2009년 02월 28일

요즘 ‘저탄소 녹색 성장’이란 용어가 국가적 과제로, 사회적 화두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8․15 기념 축사에서 ‘건국 60주년(?)’을 기념하며 앞으로 새올 새로운 60년의 국가비전으로 ‘저탄소 녹색 성장’을 제시한 이후 이 개념은 우리 사회가 고유가 상황과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현명한 전략이자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2008년은 ‘저탄소사회로 가는 원년’으로 선포되었고, 해가 바뀌고 얼마 되지 않은 1월 6일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이 발표되었다. 급기야 1월 15일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을 입법예고하였다. 이제 곧 대통령 소속의 ‘녹색성장위원회’가 만들어져 녹색성장 국가전략을 심의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한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 시대를 맞아 녹색성장을 지향하는 세계적 추세에 부합해서 우리 사회가 상당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이대통령의 축사에 따르면 저탄소 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서 “녹색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 국가발전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녹색기술’에 기초해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게 되면 ‘일자리 없는 성장’의 문제를 치유하고 녹색성장을 이룸으로써 “한강의 기적에 이어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념사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실현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태양과 바람, 꽃과 바다 에너지가 만개하는 신천지”로 변모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저탄소 녹색성장의 추구를 통해 ‘녹색기술 시장의 선도국’으로서 ‘수소시대’의 ‘녹색강국’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8월 27일에 ‘녹색성장의 주춧돌’이란 제목으로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08~2030)」(이하 국기본)을 확정․발표하면서 원전 확장을 고유가와 기후변화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즉 저탄소 녹색성장에 안성맞춤인 동력으로 제시하였다. 아울러 신재생에너지 사용비율을 현재의 2%에서 2030년에는 11% 이상, 2050년에는 20% 이상으로 높이도록 총력투자에 나서고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끌어올려 ‘에너지 독립국’을 만드는 등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여 녹색성장을 이루어나간다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우리 사회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정부의 많은 정책들이 그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을까? 녹색뉴딜사업이 발표된 후 사회 여기저기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녹색뉴딜사업을 주제어로 해서 언론재단 누리집(http://www.kinds.or.kr) 에 있는 기사를 검색해보면, 사설만 해도 십 여개에 관련된 기사만도 수백개에 달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사나 사설이 칭찬보다는 걱정과 우려를 담아내고 있다. 급기야 기획재정부에서 ‘주요 언론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 관련 일자리 등 보도내용과 관련하여’란 제목으로 보도 해명자료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기획재정부 해명자료에 따르면 주요 언론들이 “녹색뉴딜 일자리 96만개 중 96%가 건설 토목을 위주로 한 단순 노무직에 불과하다, 신산업 육성은 거의 없다, 재원 조달계획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했다면서 이에 대해 그렇지 않음을 강변하였다. 녹색뉴딜사업이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한 사업목적으로 생각했을 뿐 양질의 고도 전문기술적 일자리를 주된 고려요소로 한 것은 아니라든가, 미국이나 영국의 뉴딜사업을 봐도 학교재건, 신규철도, 병원건설, 풍력ㆍ조력발전 등 건설ㆍ토목관련 사업이 많고 ‘뉴딜’의 특성상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박은 상대를 설복시킬 수 있는 논리성도 사실성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새로 추진되는 녹색뉴딜사업으로 대부분 건설토목사업이 많다는 식으로 해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기도 할뿐더러 그들이 짓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짓고자 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도 한눈에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반박은 정부가 뉴딜사업을 얼마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부가 발표한 녹색뉴딜사업 추진방안에는 “뉴딜사업의 본질은 일자리 창출용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뉴딜사업’의 핵심은 테네시 강유역 개발을 통한 일자리 창출사업이라기보다 사회보장제도와 연금제도, 노동조합 설립 지원, 실업수당, 장애인 보조, 부유세법 도입을 비롯한 세제개혁 등 자유주의경제에 대한 국가개입의 확장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서 루tm벨트 대통령은 이를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거래(new deal)”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바로 이러한 이해에 기초해서 녹색 일자리 창출이나 녹색뉴딜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 앞에 '녹색'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청정에너지 개발에 해마다 150억달러씩 앞으로 10년 동안 1,500억달러를 들여 일자리 500만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빈곤한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의 신경제재단에서 펴낸 보고서에도 녹색뉴딜의 핵심은 에너지체제의 전환이며 이를 위해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동일한 이름의 사업이 ‘4대강 정비사업’을 비롯해서 ‘녹색 SOC’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토목건설사업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50조의 예산 중 14조 이상이 4대강 정비사업에 투입되는 것을 포함해서 모든 사회기반시설 투자에 32조원 이상이 배정되어 있다. 녹색성장의 핵심이 되어야 할 신재생에너지 연구개발 예산은 2012년까지 3조원에 불과할 따름이다.

도대체 무엇이 녹색인지, 왜 이러한 사업이 녹색인지 의아할 뿐이다. 세계적 추세가 ‘녹색’을 지향하기 때문에 이미지 포장을 위해 쓴 수사에 불과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환경에 ‘관한’ 사업이라면 모두 녹색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4대강 정비사업에서 목표로 하는 게 홍수방지나 수질개선이라면 시작부터 이 사업은 단추를 잘못 채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학자와 시민단체들이 지적하듯이 홍수피해는 4대강이 아니라 강원도 지천에서 발생한다. 홍수가 일어나고 나서 들어가는 복구비용이 홍수예방에 쓰이는 예산의 몇배이며 따리서 홍수예방을 위해 4대강 치수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홍수는 4대강에서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왜 4대강인가? 게다가 이미 작년에 정부는 이미 4대강의 97%가 정비 완료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왜 또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4대강 수질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런데 강바닥을 긁어내고 물을 더 채우면 수질이 나아질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4대강으로 들어가는 오염물질을 줄이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건 그대로 두고 강바닥을 긁어낸들, 강물을 더 채운들 그 효과가 얼마나 갈 것인가? 본류로 들어가는 지천, 작은 도랑물에서부터 오염물질을 줄이고 제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게 수질을 개선하는 지름길이다. 그런 일을 하는 데 지금 투입하려는 예산의 반의반만 들여도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서 농촌의 삶의 질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 같은 예산을 가지고 내세우고 있는 목표를 보다 적절하게 달성할 수 있는데, 어째서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을 강력히 추진하는지 저의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런 사업이 제1순위로 추진되는 사업이란다. 핵심사업 중에서도 핵심이라는 것이다.

참 어이없고 황당한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자전거가 친환경 교통수단이라고 해서 4대강에 제방을 쌓아 자전거도로를 만든다거나 지자체와 지자체를 연결하는 급행 자전거도로를 만든다는 대목에선 아연 실색할 뿐이다. 자전거가 도시의 기존 교통수단을 대체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디나 자전거도로가 있어서 안전하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건지 의도를 잘 모르겠지만 그런 사업이 녹색성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지금 이 시점에서 핵심사업으로 진행되어야 할 정도로 예산투입의 우선순위가 그렇게 높아야 하는지 내 머리로는 참 이해되지 않는다. 2012년까지 전국 자전거도로 네트워크사업에 4,980억원을, 자전거 급행도로 시범사업에 3,000억원을 투입한다고 하는데, 전국을 자건거로 연결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자전거는 근거리 교통수단이다. 자전거로 지자체와 지자체를 오갈 사람이 있을까? 자전거가 정말 친환경성을 발현하면서 제 구실을 하도록 하려면 도시에 자전거 도로와 주차시설을 만들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샤워시설을 만드는 데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동차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자전거 핸들을 감히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자동차가 소비하는 화석연료를 줄이고 자동차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와 대기오염물질을 줄일 수 있다. 아무리 태양광발전이 친환경적이라고 해도 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 설치하거나 멀쩡한 농토를 뒤덮는 방식으로 설치하면 반환경적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포장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근사하게 포장해놓은 선물, 그것의 포장을 벗겼을 때 포장할 만한 가치가 없는 선물이 들어 있을 때 느끼는 실망, 딱 그런 형국이다. 말뿐인 녹색이 아니려면 요소요소가 녹색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 요소들이 놓여 있는 맥락 전체가 녹색을 지향해야만 한다. 그린홈, 그린카 따위도 너무 화려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단열을 강화하고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찾아 실천만 해도 우리 집이 그린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온갖 첨단기술이 투입되는 그린홈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 곳엔 누가 살까? 오히려 더 열악한 가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집에 단열을 강화해주는 일을 하는 게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내고 사회를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일일 것이다. 그린카는 그린인가? 차가 다니는 도로 자체가 그린이 아닌데 말이다.

지난 해 9월 UNEP에서는「녹색 일자리들: 지속가능한 저탄소 세계에서의 괜찮은 일자리를 향하여」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에서는 농업과 제조업, 연구와 개발, 행정작용과 서비스활동 등에서 환경질을 보전하거나 복원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해야만 녹색일자리라고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생태계와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고, 효율적인 기술을 통해 에너지와 물질 및 물의 소비를 줄이며 경제를 탈탄소화시키고 모든 형태의 폐기물과 오염발생을 최소화하거나 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녹색뉴딜사업에 제시된 9대 핵심사업과 27개 연계사업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녹색경제란 사람과 자연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녹색일자리를 늘려 나가는 경제로서 녹색일자리는 보수가 좋고 지속성이 있는 ‘괜찮은’ 일자리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단순노무직이라면, 공사기간에만 존재하는 일자리라면 그런 일자리는 애초부터 녹색일자리로 보기 힘들다. ‘녹색’이란 그런 거다.

또 하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 하더라도 거론되지 않고 생략된 부분이 있다. 먼저 밝혀두고 싶은 것은, 사실 나로서는 녹색성장이 아무리 ‘녹색’이란 수식어를 달고 있어도 불편하다는 점이다. 세계화된 경제구조 속에 있기 때문에 각 사회는 자신들의 삶이 놓여 있는 지역의 생태적 한계를 잊고 있고, 세계화된 경제활동 속에서 다른 지역의 자원을 그 지역 사람들을 제치고 이용하고 있기에 얼핏 성장에 한계가 느껴지지 않지만 지구는 한정된 부양능력을 가진 행성이기에 우리의 성장을 떠받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나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을 통한 자원과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으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환경문제는 결국 우리의 성장이 다른 지역 사람들의 성장의 몫을 빼앗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경로를 우리 사회에서 따라가려 할 때 지금의 고용구조와 산업구조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 지금의 접근을 보면 녹색기술 영역의 확대는 기존의 경제영역을 그대로 둔 채 추가해서 확장시켜나가는 방식으로 보여지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경로를 따를 수 없다. 지금의 녹슨 고탄소 성장 경로를 떠받치고 있는 산업과 그런 산업구조 안에서 만들어진 일자리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요컨대 산업구조의 변화, 고용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전의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일자리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런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 가령 전국을 철도로 연결하는 교통망으로 전환해나간다는 계획―물론 이 계획은 필요하다―이 진행된다면 현재 도로 중심의 물류 및 여객체제에서 일자리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그 많은 트럭 운전수들은 어떻게 될까? 나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철도중심체제로 가는 것이 곤란하다거나 힘들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을 배려하는 방식이 고민되어야 한다는 거다. 이들에게 재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래서 이들이 새로운 교통체제의 사회에서도 새로운 일자리를 갖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석연료에서 재생가능에너지로 옮겨간다면, 과다포장이나 재포장을 금지하는 사회로 간다면, 소각이나 매립보다는 재이용과 재활용이 우선되는 사회로 변화해간다면, 자동차보다는 기차를 만들고 도로보다는 철길을 만드는 사회로 전환해간다면, 이러한 전환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일자리는 변화될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사회에서 무리 없이 일자리가 연결될 수 있도록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중심이 건설토목사업이라면 그건 사실 ‘녹색’에도 부합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성장을 견인하기도 힘들다. 대기업과 하청기업이라는 얽힘 속에 놓여 있는 지금의 건설산업 구조에서, 그리고 이른바 ‘삽질’이라는 것이 사람 손이 아니라 다양한 거대 기계가 동원되는 방식이라면 엄청나게 풀리는 돈은 사업이 진행되는 그 지역에, 또 그 지역의 기업에, 그 지역에 속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좌절하는 고학력 청년 실업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일자리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사업은 누구를 위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산이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하고 골고루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배려와 고민이 녹아있는 국가계획을 만나고 싶다. 단기적 성장에만 치우치고 녹색 이미지만 빌려오면서 모든 걸 기술만으로 풀어가려는 곳에는 그런 배려가 스며들 틈이 없지 않을까?

또 하나 사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원자력에 대한 것이다. ‘저탄소’라는 말로 원자력을 어느새 친환경에너지원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대목은 반드시 눈여겨보아야 한다. 심지어 지난 1월 15일에 입법예고된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안) 46조에는 원자력 산업육성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 조항을 그대로 옮겨오자면, “정부는 석유의존도 완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수출산업으로서의 고부가가치, 국제동향, 원전 및 원전폐기물의 입지 확보, 국민의 수용성 등을 고려하여 청정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 발전비율의 적정 목표를 설정하고, 원전의 안전한 운영, 원전폐기물의 안전처리, 기술개발, 발전 및 비발전 분야의 관련기업육성, 인력양성, 수출진흥 등 종합적인 방안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세상에! 20년 이상 국민을 갈등상황으로 몰아넣고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사안을 소위 ‘기본법’이라는 것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인지.... 발전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덜 나온다고 해서 친환경은 아니다. 환경이란 그렇게 협소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자력은 다른 어떤 에너지원에서 발생되거나 발견되지 않는 방사능을 함유하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누대에 걸쳐 자연과 인간 자체에 치명적인 파괴와 오염을 가져오기에 결코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 아니다. 방송매체를 통해 원자력을 친환경에너지원으로 거짓 홍보하는 것을 지나 이제 ‘원자력법’도 아니고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킨 걸 보면 저탄소 녹색성장법에는 ‘녹색’에 대한 진정성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묻고 싶다. 저탄소 녹색성장은 무엇을 위해 얼마만큼 성장해야 하는지, 누가 그 성장의 열매를 얻게 되는지, 어떻게 그 열매가 나눠지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저탄소 녹색성장 이전에 사회적으로 널리 회자되어온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 역시 성장에 대한 희구가 남아 있긴 하지만 저탄소 녹색성장에 비해서는 성장에 대한 욕망이 그나마 덜 노골적이었다. 게다가 경제와 환경만이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을 주요한 요소로 포함할 것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지금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대체하려는 ‘저탄소 녹색성장’엔 사회적 형평성에 대한 고려가 스며있지 않다. 그게 바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던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을 던져버리고 ‘저탄소 녹색성장’이란 구호를 새롭게 내세우는 이유가 아닌지 염려될 뿐이다.

처음 작성: 2009-03-05 11:18:19 / song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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