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2009-03-12 10:18:34 / songdw

녹색성장 담론의 허상

박진희(에너지전환 부대표)

2009년 03월 03일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행하는 단어가 ‘녹색’이 아닐까 싶다. 정부관련 뉴스에 ‘녹색’이 등장하지 않는 날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지난 2월 16일에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동아일보사와 공동주최로 ‘녹색성장전략과 체육부문의 역할’에 대한 심포지움이 열리기까지 했다. 심포지움에서는 4대강유역 자전거도로에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자전거 생활 종합계획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바야흐로 모든 정부기관들이 녹색성장에 올인한 모양이다. 이런 추세라면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은 70년대 경제성장 못지않은 속도를 얻게 될 것 같다.

이렇게 빠르게 추진되는 녹색성장 정책은 그런데, 정부의 선언대로 산업발전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 과거의 성장 위주의 정책에서 탈피한 새로운 개념인 것일까? 회색빛 성장에 익숙한 우리 사회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전지구적 위기인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일까? 그동안 우리 사회의 녹색화를 주장해온 이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에서는 녹색성장 정책이 ‘녹색’을 강조하는 정책이 아닌 과거와 유사한 ‘성장’을 강조하는 정책과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핵산업의 활성화와 4대강 정비사업이 주요한 정책사업을 이루고 있는 정책이 어떻게 녹색 정책이냐는 비판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이라는 기준에서 핵발전이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발전보다 기후변화 대응기술로서의 의미를 획득할 수는 있겠지만, 지구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녹색기술로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 운하의 사전포석 사업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 역시 4대강 유역에 슈퍼 제방을 축조하고, 4대강에 인공적인 하상 정비를 실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댐을 허물고 직수로를 원래의 수로로 복원하는 녹색 하천정비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대표적인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두 사업만이 녹색과 거리가 먼 것이 아니다. 지식경제부에서 내놓은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 역시 현재의 녹색성장 정책이 녹색이 아닌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9월 11일 지경부에서는 녹색성장의 세부 실천 계획으로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하였다. 앞으로 정부에서 추진할 기술개발 대상들이 망라된 이 전략은 과거 생산성 위주의 기술개발 전략에서 온실가스 저감 및 에너지 효율 향상 등 생태 효율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녹색 지향이라고 할 수는 있다. 양적인 경제성장만을 지향하던 과거의 산업발전 전략은 넘어섰다는 점에서 정책적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전략이 지향하는 상위 목표는 과거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보도자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전략의 주요 목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2030년까지 그린에너지 산업 9대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3% 달성”이다. 즉, 세계적으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태양광, 풍력 등 새로운 그린에너지 기술 시장에 진출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전략의 중심 내용이 그린에너지 유망분야 선정, 시장지향형 기술개발, 시장 창출의 지원, 인프라 구축으로서 과거 기술개발 정책과 동일한 것도 이 정책이 ‘녹색’이 아닌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술을 선정하는 데 있어 우리 산업의 체질을 녹색화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성, 기술성’을 고려하여 이들 기술을 (경제)성장 동력화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세계시장의 잠재력이 커서 기술적 우위 확보가 시급”하기 때문에 수소연료전지와 청정연료 분야를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세계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 우리의 기반 기술로 조기 산업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기술에 대한 집중 지원이 계획되었다. 시장성이 우선이 되다보니 기존 화석연료 체제를 유지하는 기술인 ‘석탄가스화 복합발전, 석탄 액화기술 및 CCS(CO2 포집 및 저장기술)도 주요한 성장동력 기술로 선정되었다. 성장동력이 중심이 되다보니 개발 기술이 녹색에 부합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곡물을 이용하는 바이오연료 정책이 곡물 파동을 야기하면서,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유럽에서는 제2세대 바이오 합성연료 정책으로 옮아가고 있는 반면, 우리의 그린에너지 산업 발전전략에서는 이런 고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팜유 등 바이오연료 확보를 위한 해외투자 사업에 대해 장기저리 융자를 한다는 정책만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유럽의 ‘전략적 에너지기술 계획(Strategic Energy Technology Plan)’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20% 감축하고 유럽 에너지 믹스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것을 계획의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의 그린에너지 산업발전 전략에는 산업의 성장 동력화와 수출 산업화가 주요한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 기술은 우리 사회의 녹색화에 필수적인 기술에서라기보다는 반도체와 자동차 등 우리의 주요 수출산업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이란 ‘녹색시장 상품’의 개발을 통해서 종래의 성장을 지속하고자 하는 전략에 다름 아닌 것이다. 때문에 지경부의 전략보고서에는 그린에너지 산업의 육성이 우리 회색산업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놓을 수 있는가에 대한 비전은 없고, 선정된 그린에너지 기술산업의 산업화로 몇 명의 고용이 창출되며, 생산 규모가 얼마나 늘어날 것인가에 대한 전망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환경에 부담을 줄이고, 물질을 덜 사용하며 물질순환을 원리로 하는 녹색기술(Green Technology)은 산업사회의 대량생산 기술과는 다른 원리를 따른다. 생산성 대신 생태효율성을 따르고 소모성보다 내구성을 추구하여 녹색기술 사회에서는 상품 구매보다는 상품 대여가 유리해진다. 녹색에너지 산업의 발전은 마찬가지로 중앙집중식의 대규모 발전보다 지역 순환적인 소규모 분산 발전을 유리하게 하고, 에너지효율 기술들이 에너지생산 기술보다 더 의미를 갖게 한다. 녹색에 방점이 두어진 산업발전 전략이라면 이런 전환이 가져올 지속가능성에 목표를 두고 어떤 기술이 이런 전환에 유리한지, 그리고 이들 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내놓아야 할 것이다.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는 현재의 정부 정책으로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처음 작성: 2009-03-12 10:18:34 / song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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