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2009-11-13 11:39:15 / songdw

지하도로망이 녹색교통?

박진희(에너지전환 이사)

2009년 10월 30일

서울시 도로의 정체로 인해 서울 시민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은 만만치 않다. 연구에 따르면, 서울에서 승용차에 의한 대기오염 기여도는 80%에 달하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무려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2008년 12월 기준으로 서울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약 2,957천대이며 이중 승용차가 약 2,396천대로 전체 자동차의 80.1%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도심의 일일 평균 운행속도는 15km/h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중앙차로제, 환승요금제의 도입으로 대중교통 이용률이 상승했다지만 현재의 교통 정체를 해소하는 데에는 미미하게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8월 서울시는 교통 정체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는 구상을 공표한 바 있다. 이른바 자동차 전용 지하도로망의 건설 계획이 그것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서울을 남북과 동서로 가로지르는 6개 노선의 지하도로망, 총 길이만 경인고속도로 6배에 달하는 149킬로미터의 지하도로가 2017년부터 건설될 것이라고 한다. 2017년부터 11조 2천억 원이 투입되어 진행될 예정인 이 계획이 완공되면 지상의 통행속도가 시속 8.4km가량 빨라지고 서울 전역을 30분대에 이동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지상 교통량의 약 21%가 지하도로망으로 흡수되면서, 지상도로는 자전거도로와 보행도로, 공원으로 이용될 수 있어 서울의 녹색화가 앞당겨질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의 이 계획은 단순한 산술 계산만으로는 현재의 교통 정체를 해소할 수 있어 보인다. 70년대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지상의 버스교통으로 인한 서울 교통문제가 일정 기간 해소될 수 있었던 역사적인 경험도 있다. 서울의 남과 북, 동서를 가로질러 각각 3개의 축으로, 그것도 복층으로 건설된 이 도로는 부족한 지상도로를 충분히 보충해줄 수 있다. 게다가 대형 지하주차장과 고속엘리베이터를 구비하여 지하도로만을 통해 승용차들이 서울을 가로지를 수 있도록 해놓는다고 하니 교통 정체의 상당 부분이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울시의 복층 지하도로망 계획이 60년대 청소년 잡지에 많이 등장했던 ‘미래 해저 도시’나 ‘우주 도시’ 계획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이는 서울시의 계획이 세계 어떤 도시도 시도해보지 못한 미래 계획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 세계에 건설되어 있는 지하도로는 개별 노선 하나를 지하로 건설했거나 일부 구간을 지하화한 것에 불과하다. 2.4km의 미국 보스턴 빅 딕 터널, 10km의 프랑스 A86 도로터널, 24.5km의 노르웨이 라달 도로터널 등이 지하도로로 건설되어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서울시의 계획은 지하에 서울을 가로지르는 도로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계획이다. 지하를 쇼핑 공간이나 폐수처리 설비 등으로 이용하는 계획들이 진행되었거나 진행되고 있지만 지하도로망 구축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없다.

이들 도시들이 서울시만큼 창의적이지 않아서 이런 계획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지하도로 건설은 지상도로와 달리 여러 가지 복합적인 기술 문제들이 얽히게 된다. 무엇보다 지하도로를 달리게 될 승용차들이 내뿜는 대기오염의 처리 문제가 대두된다. 전체 승용차가 전기 자동차로 대체되지 않는 한 지하도로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은 지상에서의 대기오염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현재 터널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통풍시스템 기술의 발전으로 승용차 운전자의 건강을 지켜줄 수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시스템이 작동 오류로 인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승용차 배기가스를 지상 거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이다. 서울시에서는 배기가스를 흡수하여 토양정화시스템을 통과하게 하면 충분히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토양정화시스템은 92년에 처음 시험된 대기오염 정화 기술로 2004년까지 지하주차장, 터널, 도로 주변 일부에 시험적으로 적용되었던 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 기술을 사용하자면 오염된 공기를 통과시킬 바이오소일 부지가 필요하다. 지상 녹지가 이 정화시스템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지하도로의 운영은 지상 도로보다 몇 배의 비용이 들어가는 안전설비를 필요로 한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화재는 일산화탄소를 급격하게 방출할 가능성이 높고 충분한 대피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지상에서의 화재보다 훨씬 큰 피해를 야기하게 된다. 지상 터널에서의 사고의 위험성은 스위스 고다르 터널 등을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지진이나 화재에 대비한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장거리 지하도로망 안전시스템 운영에 대한 경험은 여전히 일천하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CCTV와 지능형 교통 시스템으로 지하도로에서 일어나는 돌발 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전대책만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서울시의 계획에 따르면, 남북 축 이외의 5개 사업은 민자로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비용절감에 비중을 두는 민자 사업자들이 과연 안전시스템 구축에 얼마나 노력할 수 있을 것인가? 90년대부터 엔지니어 및 지역주민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진행되었다는 미국 보스톤 빅 딕 터널도 2006년 완공 직후 천장 구조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일본의 세이칸 터널의 경우, 예기치 않은 지하수 문제로 인해 터널 설비가 잦은 고장에 시달렸다고 한다. 시스템의 안전보다 공기 단축, 인력 절감이 우선시 되고 거대 프로젝트의 기술영향 평가나 환경영향 평가를 장애물 정도로 여기는 우리의 경우, 이 거대 지하도로망의 안전이 과연 보장될 수 있을까?

이런 기술, 안전상의 문제도 있지만, 이 같은 메가 프로젝트는 대부분이 돈 먹는 하마여서 서울시 재정 파탄, 곧 시민들의 혈세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2.4km 빅딕 터널 프로젝트가 잘 보여주고 있다. 90년대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26억 달러를 예상했으나 2006년도 완공 시점에 들어간 총 예산은 이것의 몇 배인 150억 달러로 드러났다. 공사기간은 예상보다 두 배로 길어졌다. 처음 예산에는 터널 구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주민들 반대 등의 문제들이 고려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지하도로망도 이와 크게 다르리라는 보장은 없다. 교통관련 대규모 프로젝트 258건을 연구한 플라이비어그(Flyvbjerg)는 이중 90%의 프로젝트가 비용을 낮게 산정했으나 실제 비용은 28% 높았음을 밝혀주었다. 프로젝트 규모가 클수록 비용 초과는 늘어났다고 한다. 서울시는 6개 노선의 완공에 들어가는 비용을 11조 2천억으로 보고, 이는 현재 교통혼잡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비용은 빅 딕의 경우처럼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술, 안전 문제들보다 지하도로망 계획이 안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것이 전형적인 사후처리 정책이라는 것이다. 서울시의 계획은 늘어나는 승용차 교통량을 억제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 부족한 지상도로를 지하도로 건설로 보충하여 교통을 분산시키는 정책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육상도로 증설이 어려움에 부딪치자 지하도로 증설로 정책을 바꾸었을 뿐이다. 이는 세계 대도시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통정책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런던 등 대도시 교통정책의 방향은 도심 교통량이 절대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즉, 도심 혼잡세 징수, 주차요금 인상이나 도심 주차장의 폐쇄 등을 활용해 도심에서의 승용차 이용이 불편하도록 하고 비용이 더 많이 들게 하고 있다. 아울러 대중교통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대중교통이 승용차 못지않은 편리와 접근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하철의 접근성, 환승 편리성, 장애인 등 교통 약자들이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책이 우선성을 갖게 되는 것에는 이들 대도시들에서 교통정책의 목표가 이동속도의 향상이 아니라 교통 약자의 이동 가능성, 보행과 자전거 이용의 질적 향상, 교통부문 에너지 소비량 감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보다 서울 교통란의 해소는 수도권 인구집중을 완화하는 정책들과 병행되어야 한다. 지하도로 유지를 위해 대형 주차장이 들어서고 고속 엘리베이터, 대기오염 상시 모니터링, 각종 안전시스템 부설 등은 도로 교통에 들어가는 절대적인 에너지 소비량의 증가를 의미하게 된다. 지상의 도로 다이어트로 만들어진 자전거 이용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줄어들면, 지하도로에서 승용차 속도의 유지를 위해 쓰인 전기 에너지 등으로 인해 발생된 이산화탄소가 이를 상쇄시킨다. 서울시의 정책은 온실가스 총량을 규제하고자 하는 국가 정책과도 모순되는 것이다.

승용차 중심의 교통정책, 빠른 이동성과 막힘없는 흐름이라는 산업시대 교통정책의 목표, 그리고 이를 첨단 건설 기술에 의존하여 해결하고자 하는 한, 서울 도심의 정체는 해소되기 어렵다. 갖가지 어려운 기술적 난관을 뚫고 지하도로가 완공되어도 또 다른 교통 수요 증가를 유발할 것이다. 기후변화의 위기는 우리에게 개인승용차 중심의 교통정책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은 승용차 중심의 지하도로망 건설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시의 미래 교통정책에는 녹색이 없다.

처음 작성: 2009-11-13 11:31:56 / song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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