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2009-12-24 11:14:28 / songdw

신종플루와 현대문명, 그리고 인류의 미래

강윤재(에너지전환 부대표)

2009년 12월 01일

얼마 전 금요일 저녁, 일종의 해프닝을 겪으면서 신종 플루가 나에게 얼마나 가까운 곳에 있는지 실감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은 중간고사 첫 날, 간신히 시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아픈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몸이 몹시 뜨거웠다. 옆 반 아이 몇 명이 신종 플루에 걸렸다는 소식을 이미 접한 터라 걱정이 앞섰다. 동네에 있는 신종 플루 치료지정병원을 찾았다. 간이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지만 의사는 약간 애매한 태도로 확진검사를 권하자(검시비가 비싸서 환자들의 오해가 많다는 설명을 보태면서), 거의 반사적으로 동의했다. 아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시험을 못치를 때 받을 불이익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앓아누운 채 끙끙거리는 아이를 보며 우리 부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검사결과가 음성으로 나오면 아들 시험이 걸리고, 양성으로 나오면 우리 가족의 건강이 걸렸다. 그렇게 주말을 걱정으로 지샜다.

도대체 신종 플루를 어떻게 봐야 할까? 신종 플루는 병균이니까 철저히 예방하고 치료하면 그만인 것일까? 내 아들을 연결고리로 하여 이전에는 단순한 건강상의 문제로만 보였던 신종 플루 사태가 생활상의 문제를 동반하는 복잡한 문제로 새롭게 다가왔다. 신종 플루 사태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해결책 마련을 위해서는 과학적, 의료적 요소는 물론 심리적, 제도적, 문화적, 경제적, 정책적, 정치적 요소 등까지 모두 함께 고려할 필요는 없을까? 즉, 신종 플루의 병리학적 특징은 물론 신종 플루의 기원문제(돼지독감, 산업축산), 백신의 확보 및 접종의 우선순위 문제, 수능시험에서 신종 플루로 인한 결시문제, 사회 계층에 따른 피해의 불평등문제, 항바이러스제의 특허문제(타마플루 특허권 강제 조치 문제와 경제적 이해관계), “신종 플루의 공포”에 따른 과잉반응의 문제 등을 모두 함께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신종 플루란 “신종 인플루엔자 A”의 줄임말로, 2009년 4월 이후에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새로운 종류의 독감이다. 새로움에는 늘 두려움이 뒤따르기 마련이지만 이에 더해, 발생 초기의 빠른 확산과 사망자 수의 급속한 증가, 1918년 독감의 재도래 위협(H1N1 바이러스), 10년 주기설1) 등이 겹치면서 전세계적으로 “신종 플루 공포”가 급속히 퍼져나갔다. 곧바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 경보수준의 최고 단계인 “대유행”을 선포했다. 한 동안, 비교적 안전지대에 놓여 있던 우리나라도 2009년 8월 중순 이후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경각심이 한층 높아졌다. 여기에 정부의 대응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함께 커졌다. 공포와 불신의 이중주는 언론매체를 타고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우리 사회를 “신종 플루 공포”의 회오리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신종 플루의 독성이 일반 독감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약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필요 이상의 과잉반응을 두고, 혹자는 “미국소 수입에 따른 광우병 사태”의 경우에 빗대 근거 없는 “비과학적” 선동의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위험문제를 연구하는 전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이를 두고 “위험의 사회적 증폭”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정부 정책의 실패에 따른 신뢰 상실의 문제를 국민들의 비합리적 태도의 문제로 호도하여 책임을 떠넘기려는 시도는 더 큰 불신만을 초래할 뿐이다. 정부의 신회 회복을 위한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언론의 관심에 비례하여 신종 플루의 예방법과 치료법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고, 신종 플루의 대비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의 강도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최근에는 다시 신종 플루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망자 수가 늘면서 경고음도 더욱 커지고 있다. 그동안 신종 플루를 둘러싼 다양한 차원의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 어느 누구 하나 속 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이런 상황이 신속하게 해소될 기미는 커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신종 플루 사태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이 모든 논란이 일시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지 모른다.

이 글은 신종 플루에 대한 현실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보다는 기존의 접근들이 가지는 한계를 조금은 거시적 차원, 즉 인류문명과 전염병의 관계에서 새롭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또한, 그를 바탕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이고자 한다.

신종 플루는 일반 독감에 비해 약 3배의 전파속도를 지녔지만 치사율은 1퍼센트에 훨씬 못미치는 비교적 낮은 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그럼에도 신종 플루의 확산은 민감한 사회문제로 인식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치사율이 낮아도 감염률이 높아지면 사망자 수가 덩달아 많아진다. 만약 치사율이 0.05퍼센트라면, 감염자 수(분모)가 1만 명에서 1백만 명으로 100배로 늘어날 때 사망자 수(분자)도 5명에서 500명으로 100배 커질 것이다. 또한, 감염 환자가 늘어나면 변종이 생길 확률도 높아지고, 그에 비례하여 독성이 강한 독감 바이러스의 출현가능성도 덩달아 커진다. 이외에도 많은 사람이 독감에 걸리면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일반 독감으로 인한 전세계의 사망자수가 연간 수십만 명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현재 신종 플루에 대한 사회적 반응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2) 그렇지만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 이를 신종 플루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의 탓만으로 설명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전염병 발병 후 곧바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 경고수준의 최종 단계인 “대유행”을 선포한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 것은 아닐까? 역사적 교훈에 비춰봤을 때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이 문제의 열쇠는 신종 플루의 공식명칭이 신종 인플루엔자 A(H1N1)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즉, A형과 H1N1 아형에 긴장유발 요인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인플루엔자(독감)는 그 유형에 따라 A, B, C형으로 크게 나뉜다. B와 C형은 인간에 적응하여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감기의 형태로), A형은 조류에게서 인간에게로 넘어오는 초기 단계로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A형은 스스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항원 소변이) 다른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교환하여 재배열(항원 대변이)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변신의 귀재이다. 이런 뛰어난 변신 능력으로 인해 우리 몸은 새로운 독감(항원)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항체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늘 어려움에 직면한다. 백신은 항상 뒷북을 칠 수밖에 없고, 항원 대변이를 통해 형성된 독성이 강한 변종이 대유행을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인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인류는 1918년의 독감을 비롯하여 몇 차례의 대유행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주 1) 참조). 또한, 1918년 독감의 아형이 H1N1이라는 사실은 우리의 공포심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과학자들은 신종 플루가 1918년의 독감과는 유전체의 조각이 다르고, 독성도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1918년 독감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전염병학자들이나 바이러스학자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하고 있다. 그것은 조류독감(H5N1)이 유전자 재배열을 통해 인체독감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조류-돼지-인간 사이의 독감 삼각관계가 주로 언급되는데, 돼지를 숙주로 조류독감이 인체독감으로 옮겨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우려된다. 또한, 사람들이 독감과 동시에 조류독감에 걸렸을 때 두 바이러스가 인체에서 항원 대변이를 일으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조류독감(H5N1)의 치사율이 50퍼센트를 넘는다고 하니,3) 만약 이 사나리오가 현실화되는 날에는 1918년 독감(약 2.5퍼센트의 치사율)을 훨씬 뛰어넘는 사상 초유의 대재앙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1918년 독감(H1N1)의 유전체 조각들이 조류독감(H5N1)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과학자들은 인플루엔자 A의 아형에 관심이 높고, 변종의 출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4)

현재 의료계와 보건당국은 신종 플루를 조기에 발견하고, 확산을 방지하며(검역, 예방백신 주사, 환자 격리 등),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한 때 소강상태를 맞아 조금 느슨해진 감이 없지 않았지만 본격적인 환절기를 맞아 신종 플루의 기세가 다시 거세지면서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신종 플루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가 바로 이 지점, 즉 신종 플루의 확산 방지(예방)와 치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초기에는 외국으로부터 신종 플루의 유입을 차단하는 일에 집중했지만 지역감염이 본격화된 이후부터는 “신종 플루 바로알기”와 “신종 플루 예방법”을 주축으로 대대적인 예방 캠페인(계몽운동)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방법의 효과 여부를 둘러싼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가령, 예방법의 압권인 “손씻기 운동”을 두고 흐르는 물에 몇 초 동안 씻어야 효과가 있는지를 둘러싸고 작은 공방이 벌어졌고, 특정 회사의 세정제가 날개돋친 듯 팔려 후문을 낳았다. 그렇지만 예방과 치료에 대한 논의는 결국 예방 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의 확보 및 효과 문제로 수렴되었다.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안전판을 확보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터, 신종 플루 사태에서 많은 사람들은 백신과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의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안전판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까닭에 언론에서는 연일 백신 생산이 늦어지는 것을 질타하고, 접종이 가까워진 지금에 와서는 우선순위 문제와 제한적 무료접종에 따른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바이오 주권”의 문제를 제기하며 백신 생산에 적극 대처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또한, 백신과 유일한 치료제로 알려진 타미플루의 확보에 충분한 예산을 투자할 수 없는 이유가 “4대강 정비사업” 때문이 아닌가라고 따져 묻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서 “타미플루 특허정지”와 “강제실시” 문제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양진영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는 마치 신자유주의에 대한 찬반을 둘러싼 논쟁을 주제를 달리해서 보는 것 같다.

한편, 예방과 치료를 가로막고 있는 사회구조 및 세계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우리의 관심의 폭을 한 차원 더 높여준다. 먼저, 국제적 및 국가적 차원의 공중보건 및 공공의료 체제가 무력화됨에 따라 발빠른 대응태세를 갖출 수 없는 한계를 지적한다. 가령,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병원과 보건소를 중심으로 한 공공의료체제가 신종 플루에 대한 대응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비중이 높지 않은 까닭에 근본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의료 민영화” 정책으로 의료의 공공성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신종 플루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대비는 등한시될 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신종 플루와 같은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할 수밖에 없는 세계체제의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자신의 책 『조류독감』에서 신종 플루의 아형들이 종간 진화를 가속하면서 전세계로 확산할 수 있는 주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들고 있다 ― (1) 1980-90년대의 축산업 혁명(산업축산), (2) 중국 남부의 산업 혁명, (3) 제3세계 ‘거대 도시’와 그에 부속된 슬럼의 탄생. 이는 전세계적으로 육류소비량이 급속하게 증가함에 따라 가금류와 돼지 사육이 미국의 타이슨 푸트와 같은 거대기업들에 의해 주도되면서 집약적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서로의 사육장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함으로써 종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출현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여기에 거대 슬럼의 존재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조류-돼지-인간의 “삼각 커넥션”이 활발한 상호작용을 보일 때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는 중국 남부의 광둥성이 잘 보여준다.5)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신종 플루의 예방책과 치료법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사회구조적 접근은 우리의 시야를 확장시켜주기는 하지만, 예방과 치료의 관점에 서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관점들은 신종 플루를 무서운 “적”으로 보고 있으며(따라서 우리는 현재 신종 플루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고), 현재의 위기를 넘기는 것이 급선무이며,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과학기술(그 산물인 백신과 항바이러스제)이라고 전제하고 있다. 즉, 현재 우리의 관심은 온통 신종 플루라는 새로운 전염병에 쏠려 있다. 어떻게 해서든 신종 플루라는 지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증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백신과 항바이러스제는 위기탈출을 도와줄 거의 유일한 지원군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사방이 온통 지뢰로 널려 있는 지뢰밭 한가운데에 서있는데, 과학기술이라는 “지뢰 탐지봉”에 대한 믿음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전염병과 인류문명의 관계에 대한 보고서 중에서 가장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는 미국의 역사학자 맥닐(W. McNeill)의 『전염병의 세계사』(Plagues and Peoples, 2005)를 들 수 있다. 이 책의 우수함은 전염병을 다루고 있는 많은 책에서 맥닐의 관점을 소개하고 차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역사적이고 문명사적 관점에서 전염병과 인류문명의 관계를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인류가 전염병의 비밀을 제대로 알기 이전 시대를 주로 분석하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1700년 이후는 마지막 장에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맥닐은 남미의 아즈텍과 마야 문명이 소수의 스페인 군대에게 힘없이 무너진 이유를 전염병에서 찾고,6) 인류 문명의 출현 및 확산 과정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를 미시기생과 거시기생이라는 이중적 기생의 균형과 불균형의 변주로 본다. 인간은 거시기생과 미시기생의 이중착취에 따른 불안정성을 숙명처럼 안고 산다. 여기서 거시기생생물(집단)이란 일하는 자를 착취(기생)하는 지배집단을 일컫고, 미시기생생물이란 우리 몸속에 기생하는 미생물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국가란 세금이라는 온건한 수탈 방식을 개발함으로써 거시기생집단이 일하는 사람과 공존을 모색한 결과이고, 풍토병이란 미시기생생물이 인간과 공존을 모색한 결과이다.

맥닐로부터 우리는 신종 플루에 관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신종 플루를 분리된 하나의 실체로서가 아니라 전염병과 인류문명이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느닷없이 출현한 “적”의 공격 때문에 궁지에 빠진 것이 아니라 수없이 겪어왔던 일을 조금 색다르게 다시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서 생태적 차원에서 신종 플루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인류문명과 전염병은 공진화(coevolution)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신종 플루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염병은 인류문명을 자양분으로 삼아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풍토병이나 소아병으로 끊임없는 적응을 모색해왔다. 이는 인류와 마찬가지로 신종 플루도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관심이 있음을 함축한다. 즉, 신종 플루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적”의 이미지에 기초하여 퇴치를 강조하는 위생학이나 전염병학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순환과 작동원리라는 보다 근본적 시각을 제공하는 생태학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하나의 지뢰와 마주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내내 지뢰밭에서 힘겨운 생존투쟁을 벌여온 셈이다. 인류의 역사는 14세기의 페스트와 19세기의 콜레라, 20세기의 독감으로 대표되는 실로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전염병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렇지만 최근까지도 우리는 역사상 전례 없을 정도로 전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자신감의 원천은 단연 과학기술의 힘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과학과 공중위생은 인류와 전염병의 역관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았다. 미생물학과 의학만큼 과학이 놀라운 성공을 거둔 분야도 드물 것이라는 감탄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19세기 후반, 파스퇴르와 코흐가 전염병의 원인인 세균의 정체를 밝히고, 그 균(탄저균과 결핵균)을 분리해낸 다음, 백신을 개발하여 제거함으로써 마침내 결정적 승리의 교두보가 마련되었다. 이 교두보는 이중적 의미를 지녔는데, 하나는 전염병의 정복을 위한 것으로서 다른 하나는 열대 지방으로의 진출을 위한 것이었다. 서구 제국주의는 자신들의 진격을 가로막던 전염병을 백신과 치료제라는 무기를 통해 물리침으로써 증기선을 타고 아프리카 중심부의 콩고강 깊숙한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 “암흑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었다.7) 이제 세계는 백신과 치료제(말라리아의 치료제 키니네와 같은)의 발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그 후, DDT의 신화와 페니실린의 개발, 폴리오 백신 개발 등으로 이어지는 승전보는 과학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만은 금물이다. 승리가 목전에 있다는 자신감은 까닭모를 두려움 앞에서 서서히 퇴색되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도 자연의 조화로움과 온화함을 잃지 않았던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에서 그 두려움의 실체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DDT는 과학자들의 예측과 달리 해충뿐만 아니라 새들의 목숨도 함께 앗아가 버려 봄은 다시 왔건만 새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이제 사태는 분명하다. 그런 세상에서 인간만 무사할 수 있을까? “자연의 역습” 또는 “자연의 복수”가 시작된 것이 아닐까. 과학기술은 분명 우리에게 반(反)인간적 존재들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안겨주었지만, 알고 보니 그 무기의 끝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진화론적 지식은 회색빛 전망을 더욱 짙게 했다. 우리는 분명 과학기술을 통해 “마술 탄환”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표적인 병원균은 그 진화 속도가 너무도 빨라 탄환의 유효기간은 매우 짧다. 변신의 귀재인 독감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안 좋다.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항상 독감과 시간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신종 플루의 백신은 비축이 불가능하고, 생산하여 공급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다(기술혁신을 통해 백신 생산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데,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관심의 부족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더욱이, 백신은 예방효과를 주기는커녕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는 골칫거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1976년, 미국에서 벌어졌던 길렝바레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 에피소드는 백신 접종이 어떤 사회적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8)

과학이 전염병을 완전히 퇴치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은 점차 회색빛 암울함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현대의학이 퇴치되었다고 보고한 많은 전염병들이 우리를 다시 위협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전염병의 귀환”이 본격화된 양상이다. 그런 가운데서도/그렇기 때문에 예방백신과 치료제(항생제, 항바이러스제)에 믿음은 쉽게 버릴 수 없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염병의 전쟁터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지금 당장 백신의 생산을 늘리고, 예방접종을 실시하며, 타미플루를 충분히 비축하라!”는 명령은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다. 말은 않지만, 우리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간다.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고 근거 없는 소문이 불안에 떠는 현대사회의 회색빛 상공을 맴돌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완전함을 향한 열망은 종종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은 소중하다. 그리고 환상은 빨리 깨질수록 좋다. 현자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완전함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를 반복해서 경고한다. 테크노피아(technopia)의 꿈은 현실이 아니라 광고에서나 실현가능한 법이다. 병균 없는 깨끗하고 안전한 세상에 대한 꿈도 마찬가지리라. 전염병의 정복자들(위대한 세균학자, 생물학자, 의사 등)에 대한 무용담이 화려하게 치장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의 불안감은 더욱 증폭된다. 지나친 기대와 지나친 실망은 동전의 양면이지 않은가. 전염병에 대한 과학의 성과는 결코 적지 않지만 병균 없는 깨끗하고 안전한 세상이란 애당초 가능하지 않았고, 오히려 완전함에 대한 섣부른 기대가 과학에 대한 불신만 더욱 키운 꼴이다.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도 인류는 제한적이지만 꽤 괜찮은 예방법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전염병 문제에서 과학과 의학에 대한 인식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9)

신종 플루 사태는 우리에게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신종 플루를 단순히 우리의 외부의 침입자이자 “적”으로 보고 괴멸하려는 시도는 부질없어 보인다. 우리는 세균과 바이러스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생존과 번식(번영)에 관심이 있다면 그들 또한 그렇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사치스런 생각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앞만 보고 뛰다간 막다른 골목에 갇혀 정말로 곤경을 치룰 수 있지 않은가? 문제는 어떤 생존전략을 짜느냐 하는 것이다.

첫째는 박멸(사생결단)전략이다. 우리가 현재 취하고 있는 방법이다. 숙주-기생의 관계에서 병균은 우리의 외부에서 호시탐탐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적이고, 우리에게는 적을 무찌를 수 있는 과학기술(의료)이라는 무기가 있다. 문제는 무기의 끝이 무뎌지면서 전염병의 위협이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은 상대방(비서구인, 자연)을 타자화하면서 마치 적을 다루듯 힘으로 제압하려드는 서구문명과 여러모로 닮아 있다. 서구문명이 전지구화가 이루어진 현대사회에서 환경문제가 붉어진 것도 우연은 아닌 셈이다. 전략 수정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 없는 속에서 관성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지만, 이 전략이 인류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음은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이 전략의 또 다른 문제점은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과학(의료)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강력한 적에 대한 공포 속에서 최전선의 상황만을 주시하면서 무기력한 상태 속에 빠져 있다.10) 시민의 자발성은 정치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과학(전염병)의 영역에서도 발휘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지나친 것일까?

둘째는 공존전략이다.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병균과의 공존이라니 선뜻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서로가 상대방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데탕트(détent)처럼 적과의 공존을 모색함으로써 평화의 시대를 열었던 사례는 결코 적지 않다. 물론, 전염병과 데탕트는 이종간(異種間) 문제이고, 전자는 생물학(세균학)의 문제인 반면 후자는 정치학의 문제이니 그 성격도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사고 전환이 불러온 엄청난 변화를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또한, 전염병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존재, 즉 불청객이라는 사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전략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산발적으로 존재하지만11) 그것으론 부족하다. 당연히 치밀하고 신중한 공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 속에서 과학은 여전히 우리의 강력한 무기로 남겠지만 주로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략의 기본적 성격은 과학-의료적 접근은 물론이고 사회문화적 접근, 더 나아가서 생태적 접근을 모두 포괄하는 것이 될 것이다. STS의 관점과 연구 성과는 이를 위해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12) 또한, 전염병에 대한 과학 연구와 더불어 우리의 삶과 사회구조, 더 나아가 문명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뒤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촉진할 수 있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강구될 필요가 있다.

매우 거칠게 새로운 전략 수립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살펴봤다. 불안감을 더하기는 싫지만 “전염병의 귀환”과 관련하여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기후변화이다. 기후변화의 가속화는 기존의 기후패턴을 뒤흔들어 생태계의 안정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 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류문명과 전염병의 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최근 들어 휴전선을 중심으로 말라리아가 확대되고 있는 소식이나 중국 꽃매미 사태는 변화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작은 징후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신종 플루 사태가 개별 사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인간-문명의 관계망 속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걸맞게 우리의 인식의 지평도 관계망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


1) “인플루엔자의 황제”라 불리는 에드윈 킬버른(E. Kilburn)은 <뉴욕타임즈>(1976.12.3) 칼럼에서 1940년 이래 인플루엔자가 10년(11년)마다 “대유행”을 일으키는 현상을 두고 “10(11)년 주기설”을 주장한 바 있다. 이것은 1918년의 독감(일명, 스페인 독감)에서 최소 2천만 명에서 최대 1억 명이 사망한 후 1957년의 아시아독감(H2N2), 1968년의 홍콩독감(H3N2), 1977년의 러시아독감(H1N1)으로 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2)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년간 사망자 수가 2천에서 4천 명 정도이고, 미국의 경우에는 2만 명에 달한다.

3) “1998년의 경우 홍콩에서 16명의 환자 중 4명이 사망한 바 있고 최근에는 44명의 환자 중 32명의 환자가 사망하여 73%의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인용: 배시애․이택구 공저 (2007), 『전염병학: 글로벌시대의 주요감염병』, 도서출판 동화기술, 13쪽)

4) 인플루엔자 A는 HA(헤마글루티닌)와 NA(뉴라미니다아제)를 기준으로 아형을 구분한다(1980년부터 독감 바이러스 표기법은 HxNy 체제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HA란 독감 바이러스를 세포에 침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단백질을, NA란 자기복제를 마친 바이러스가 세포를 탈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효소를 말한다. HA가 세포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오는 열쇠라면 NA는 세포를 탈출할 때 사용하는 비상구이다.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는 바이러스의 탈출구를 봉쇄하여 바이러스가 다른 세포로 퍼지는 것을 막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바이러스를 최종적으로 죽이는 것은 타미플루가 아니라 몸 자체의 면역반응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HA아형이 모두 15종, NA아형은 모두 9종이다. 이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할 것. 마이크 데이비스/정병선 옮김 (2008), 『조류독감: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돌베개(1장).

5) 중국 남부의 광둥성은 2002-3년에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최초 발생지역이다. 대다수의 전염병학자들은 광둥성이 사람과 각종 동물들의 접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가령, 사스의 경우에는 흰코사향고양이에게서 원인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는데, 중국사람들이 추위를 견디게 해준다는 이유로 이 고양이를 잡아먹으면서 사람이 전염되었다고 본다.

6) 무력한 패배에 대한 맥닐의 해석은 이렇다. 미생물을 탐지하고 전염병의 정체를 밝혀낸 18세기 중반 이전까지 인류에게 천연두나 선페스트(흑사병), 콜레라 등과 같은 전염병은 그야말로 천형(天刑)이었다. 어느 날, 정복자들과 함께 들이닥친 전염병(천연두)은 아즈텍과 잉카 인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정복군은 멀쩡한데 그들은 픽픽 쓰러졌다. 전투력이 치명적으로 훼손되었을 뿐만 아니라 안타깝게도 하늘은 정복자 편이었다는 생각이 퍼져나갔다. 저항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들의 종교는 무력했고, 그런 종교에 기반한 그들의 사회체제도 급속히 붕괴되고 말았다. 남미의 문명이 유럽의 문명에 속절없이 편입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처럼 군사적 우위 못지않게 전염병에 대한 적응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7) 조셉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에서 주인공은 벨기에 국적의 증기선을 타고 아프리카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8)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지나 콜라타/안정희 옮김 (2003), 『독감』, 사이언스북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일반 독감 예방 백신을 접종한 노인 분들의 사망사건이 있었는데, 현재까지 이런 사고는 예방백신 접종에서 피할 수 없는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신종 플루 예방백신이 본격적으로 접종되기 시작하면 예방백신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격화될 수 있다.

9)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역사학자 맥닐에 따르면, 페스트는 초원지대를 가로질러 진격한 몽골 기병을 따라 유럽으로 전파됐다. 그 과정에서 페스트의 매개체인 곰쥐들이 초원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초원지대에 사는 유목민들은 좀처럼 페스트에 걸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양한 의식과 타부를 통해 페스트의 매개체인 곰쥐를 멀리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이 지혜를 잘 모르는 외부인들이 초원지대에 자리를 잡자 다시 페스트가 창궐했다.

10) 최전선의 상황에 대한 묘사에 대해서는 “포토다큐/질병관리본부․병원․공항…새 질병과의 전쟁 ‘최전선 24時’”(한국일보, 2009.9.15)을 참조할 것.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신종 플루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괴물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기술권(technosphere)의 보호 아래서 안전한 생활을 영위하다가 갑작스런 사고로 기술권의 일부가 뚫리면서 자연의 괴물이 우리를 습격하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11) 다음을 참조할 것. 최석민 (2007), 『초대하지 않은 손님, 전염병의 진화』, 프로네시스.

12) STS란 과학기술사회(Science, Technology, & Society) 또는 과학기술연구(Science & Technology Studies)의 줄임말로,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처음 작성: 2009-12-22 10:01:00 / song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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