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2010-02-10 18:26:35 / songdw

에너지 전환의 과제를 다시 새기자

강윤재(에너지전환 부대표)

200년 02월 01일

에너지 전환의 과제를 다시 새기자 - 코펜하겐의 실패와 원전 수출 사태를 접하여

지난 12월7일에서 18일까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끝을 맺었다. 국제적으로 실망스런 평가가 줄을 잇고, 우려의 목소리도 켰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일부 환경단체의 관심사로 치부되는 경향이 강했다. 한편, 연말을 목전에 둔 시점에 “해외 첫 원전 수주”라는 뉴스가 “MB의 쾌거”로 언론을 장식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는 사라져버렸고, 원전수출이라는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가 그 자리를 채웠다. 사실, 작년 말에 있었던 이 두 사건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이다.

지구는 매우 큰 행성이지만 그 공기층은 매우 얇다. 비유하자면, 지구를 농구공이라 한다면 지구의 공기층인 대기의 두께는 농구공에 발라놓은 유약에 불과하다. 이렇듯 취약한 대기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무한할 것만 같았던 자연과 자원은 이제 산업화시대의 통념에 불과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기온 상승이 밀접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음을 밝혀냈다. 대기 중에 더 많은 이산화탄소는 곧 지구의 기온상승을 뜻한다. 산업화 시대 이후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량은 급속히 늘었고, 그에 따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코펜하겐 총회에는 인류가 때늦은 후회라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프로그램을 지금 당장 끌어내자! 그러나 인류는 항상 닥쳐야 움직이는 나쁜 버릇을 이번에도 버리지 못했다(이와 관련해서는 윤순진 대표의 글이 우리 단체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으니 참조바랍니다).

최근 들어 미래의 재난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냥 흥미꺼리 정도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영화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다고 했을 때 예사롭지 않다.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아이티 지진참사의 경우에도 현대문명이 자연재난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잘 보여준다. 엄청난 참사에 아이티의 사회 질서가 일시에 붕괴되면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모습은 향후 인류 전체의 모습일 수도 있다. 현대인들은 과학문명이 뒷받침하고 있는 현대문명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위기의식에 빠져들곤 한다. 어쨌든 우리의 미래가 생각보다 취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현대인들 사이에서 폭넓게 공유되어 있는데, 이는 괜한 기우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장의 이익에는 악착같지만 미래의 위험에는 둔감하기 쉽다. 설마 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회원사랑방에서 함께 봤던 <재앙을 위한 레시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지구가 각자에게 허용해줄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연간 3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보다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선진국은 약 20톤, 우리나라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9위이다). 핀란드에 살고 있는 영국 태생의 존 웹스터(주인공이자 감독)는 가족과 함께 배출량 줄이기에 나서지만 고통의 연속이었다. 근본적인 생활 개선을 하려는 그의 태도는 가족들마저 등을 돌리게 한다.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는 말이 있다. 조그마한 차이가 급작스럽게 큰 변화를 일으키는 출발점을 말한다. 이 말을 기후변화에 적용해보면, 기온 폭증의 티핑포인트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100년 동안의 온도변화가 2도(℃) 이상 상승한다면 티핑포인트에 도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에는 비가역적 반응이 일어나서 어떤 노력에도 기온의 폭발적 상승을 막을 수 없고, 기후를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어 인류 문명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1990년을 기준으로 2도(℃)가 넘지 않도록 기온 상승의 고삐를 바짝 잡아당길 수 있는 실천 프로그램의 합의와 즉각적 실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바로 인간 활동에 의해 발생하는 온실기체(특히, 이산화탄소)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이다. ‘기후변화 정부간 패널’(IPCC)은 2050년까지 1990년의 온실기체 배출량을 기준의 80퍼센트로 줄여야 한다고 판단한다.

아마도 전체(인류)의 지속가능성과 생존보다는 부분(자국)의 이익을 더 소중히 여긴 때문일 것이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관계를 비롯해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이 작용하는 만큼 합의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코펜하겐의 실패는 아무래도 자국 이기주의와 현실안주,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의도적 무시) 등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발 빠르게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데 더 열을 올렸다. G20회의의 의장국으로서 국제적 위상을 말하지만, 그 속에는 천박한 애국주의와 자본주의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는 제(인류의 공존과 번영, 지속가능성)보다는 젯밥(수출경쟁력)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원자력이 기후변화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새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1990년대에 일본의 핵공학자이자 시민과학자로서 반핵운동에 앞장섰던 다까기 진자부로 박사는 한마디로 원자력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왜 그랬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원자력산업이 퇴보를 거듭한 데는 1979년의 미국 스리마일섬(TMI) 원전사고와 1986년의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은 1979년 사고 이전에 지어진 103기의 원전이 현재에도 그래도 유지하고 있으며, 1986년 사고 이후로 유럽에는 원전 건설이 전면 중단되었다. 독일에서는 원전을 단계적으로 철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사실, 원전의 안전이 의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57년 영국의 윈드스케일 원전(현재 셀라필드원전)의 화재사고부터였다. 엄청난 안전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원전관계자들의 강변은 원자력의 안전신화로 포장되었지만, 체르노빌 사고는 때늦은 후회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현재에도 크고 작은 원전사고는 계속되고 있다. 한동안 대형사고가 뜸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젠 원전이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굉장한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원전처럼 복잡한 기계장치에서 대형사고를 근본적으로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미국의 사회학자 페로우의 “정상사고론”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원전은 발전과정에 뿐만 아니라 폐기물 처리과정에도 큰 위험을 초래한다. 우리나라에서 20년 이상을 끌었던 방폐장 건설을 둘러싼 심각한 사회적 갈등은 중저준위에 관한 것일 뿐이다. 고준위 처리는 중저준위 처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전세계적으로 아직까지 건설된 사례가 없다. 미국의 경우에도 라스베거스에서 10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유카산에 고준위 영구처분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지만, 라스베이거스의 주민들이 관광도시로서의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을 우려해 거세게 반발하면서 건설이 중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아직 안정성이 충분히 검증된 처분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주에 짓기로 결정된 중저준위 처분장의 경우도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짧게는 40년을 사용하고 수만 년 동안 그 쓰레기 처리에 골몰하도록 만드는 원자력발전의 실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밖에도 원전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동 중에도 방사능이 새어나와 주변을 오염시키고, 냉각용으로 사용하는 물을 바다에 방류함으로써 주변 생태계에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런 문제점에도 우리나라에는 이미 20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고, 2022년까지 12개를 더 짓는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더욱이, 원전이 에너지 자립을 넘어서서 수출의 효자종목이자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UAE 원전 수주 성공이 기폭제였다. 수주와 관련된 이런 저런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수주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의구심이 커지고 있지만, 수출 관련 기사들이 등장하면서 원자력 시장이 새롭게 열리기라도 한 듯 요란을 떨고 있다. 여기에는 복잡한 정치경제학이 작용하고 있지만, 그 근본에는 에너지 전환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놓여 있다. 원자력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당연히 원자력으로는 에너지 전환의 과제를 이룰 수 없다. 원자력의 장점은 화석연료의 연장선상에서 그나마 이산화탄소 발생이 적다는 것뿐이다. 원자력 발전의 연료인 우라늄은 지하자원으로 석유처럼 그 매장량이 한정되어 있어 지속가능하지 않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원자력은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걱정을 가리는 일종의 마약과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대량소비사회의 전환도 함께 염두에 둬야함은 상식에 속하다. 그런데 원자력은 대량소비사회를 떠받치는 에너지원에 불과하다. 지금부터 위기감을 가지고 준비를 해도 부족한데, 원자력으로 지금은 괜찮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위기에 처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저탄소 녹색성장의 허구성은 원전 문제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에너지 기본계획의 수립과정에서부터 제기된 바 있듯, ‘녹색’성장이 아니라 녹색‘성장’에 관심이 있음을 시사한다. 마치, 지속가능발전을 가리고 ‘성장’을 매끈하게 포장하기 위한 용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편, 많은 국민들이 원전수출에 환호한 것은 우리의 원전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부심이 크게 작용한 때문인 것 같다. 이는 황우석 사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세계 최고”, “세계 제일”, “노벨상” 등과 같이 다분히 국수주의적 태도와 일맥상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과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애국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원전수출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국위선양으로 바람몰이를 하는 맹목적인 애국주의, 더 나아가서 국수주의를 문제 삼는 것이다. 우리가 원전수출에 대해 애국주의에 경도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무엇보다, 원전수출은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원자력 위주로 완전히 굳히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마치 원전이 현재의 에너지 위기를 구출해줄 수 있는 대안으로 잘못 인식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는 에너지 전환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욱 큰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많은 현실적 이유와 정치경제적 이유로 원전수출의 정당성을 옹호하려는 시도가 있다.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원전이 에너지 전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너무도 분명하다. 이 시점에서 일반시민들이 패널을 구성하여 미래 에너지 전력정책에 대해 전문가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패널들 사이에도 밤을 새우면서 토론한 끝에 내렸던 결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4년, 시민합의회의에서 시민들이 <시민보고서>를 통해 내린 결론은 원자력은 미래 에너지의 대안이 될 수 없지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으니 에너지 전환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결론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은, 에너지 전환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도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전반적으로는 먼나라의 일로 받아들이거나,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계기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불철저함이 원전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달콤함에 빠져 가서는 안 될 낭떠러지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다시 한 번 문제의식을 곧추세우고 에너지 전환의 과제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처음 작성: 2010-02-10 18:22:24 / song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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