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2010-09-28 14:46:52 / songdw

천박한 냉방문화, 여름이 두렵다

윤순진(에너지전환 대표)

2010년 7월 23일

언젠가부터 여름이 두려워졌다. 무더운 날이 많아져서? 아니다. 과도하게 틀어대는 냉방기 탓이다. 필자는 세미나나 토론회가 열리는 호텔이나 대형 건물에 갈 일이 자주 있는데 이런 곳은 정말 고역스럽다. 이런 날엔 긴팔 옷을 꼭 챙기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서너 시간 동안 한기를 참고 있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지끈거린다. 반팔 옷 입고 온 사람들은 그야말로 낭패다. 도대체 이 실내온도는 누구에게 쾌적하도록 맞춰진 걸까? 계절에 맞게 입고 다니는 사람을 고역스럽게 하는 냉방문화는 천박할 뿐이다. 더구나 냉방이 과도한 방에서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에너지 절약과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등을 논하는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우리 사회 전력 소비는 무려 4.2배나 증가했다. 2000년 이후에만 1.6배나 늘어났다. 전력 소비 증가가 가장 두드러진 부문은 상업부문으로 90년 이후 2009년까지 무려 8.5배, 2000년 이후에만 2배 이상 늘었다.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같은 기간 각각 3배와 1.4배 늘어난 걸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증가다. 2009년 현재 산업부문이 총 전력 소비의 50.1%로 비중이 가장 높지만 30.7%인 상업부문이나 14.6%인 가정부문의 전력 소비가 다양한 전기제품 이용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도 눈여겨볼 일이다.

정부는 다음주부터 은행, 백화점 등 연간 에너지 소비량이 2000TOE(석유환산톤) 이상인 586개 건물의 권장온도를 26도 이상(판매시설은 25도 이상)으로 제한하고, 미준수 건물에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방침이다.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는 지켜볼 일이다. 짐작해보건대 사회적 반발도 있을 테고 이행 여부를 감독하기 위한 행정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규제 대상들의 경제 규모로 미루어 300만원 정도의 과태료를 두려워할지도 의문이다. 일전에 국회도서관 지하 소회의실에서 토론회가 열렸는데, 그때 이미 공공기관은 실내온도를 28도로 유지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 방은 너무 추웠다. 이에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당시 참석했던 지식경제부에서 나온 분이 평균온도로 규제하기 때문에 지하는 춥고 꼭대기층은 찜통이란다. 그 답에 참가자 대부분이 웃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규제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닌가?

온도에 대한 직접 규제보다는 단위면적당 전력 사용량 기준을 밀도 있게 수립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동일한 실내온도를 유지한다 해도 건축 재료와 디자인, 단열 정도, 입지 방향에 따라 투입 에너지 양은 천차만별이다. 단위면적당 전력 소비량을 정해놓으면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건물 단열을 강화하고 태양광 등 재생가능에너지 설비 설치를 확대할 것이다. 만약 전력 예비율 감소에 초점을 맞추면 발전소 건설 확대가 처방으로 등장하고 그 결과 전력 공급이 증가해 전력 낭비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전력 소비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기후변화와 늘어나는 핵폐기물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따라서 전기가 귀하고 비싼 에너지이며 소비 감소로 인한 약간의 불편은 감수하겠다는 개개인의 인식 전환과 함께 인식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행위도 변화시키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요금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전기가 원가 이하로 값싸게 공급되는 현실에서 개인의 도덕성이나 기업의 순응성에 기대는 규제방식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용도별·용량별 요금제가 아니라 발전소로부터의 거리와 계절, 시간대에 따라 요금을 차별화하고 환경에 미치는 외부효과를 반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 글은 <경향신문>(2010년 7월 23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처음 작성: 2010-09-28 14:40:24 / songdw
3번 고침, 읽음: 6,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