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2010-09-28 15:28:19 / songdw

말이 원래 가치를 잃어버릴 때

윤순진(에너지전환 대표)

2010년 9월 17일

대화할 때 정말 기본이 되는 건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뜻을 서로 간에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같은 물건이나 같은 느낌, 같은 생각을 동일한 단어로 표현할 때 남들과 오해 없이 대화할 수 있고 그 결과 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맥락에 따라 단어의 뜻이 다르게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에도 누구나 맥락에 따른 의미의 차이를 공유하면서 사용한다. 심지어 ‘물은 셀프’라는 음식점 안내 글을 보고 우린 물은 손님이 직접 가져다 먹으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그렇게 한다.

그런데 요즘 필자는 그간 별다른 문제없이 사용했던 말들이 원래의 뜻과 다르게 쓰여 종종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게 된다. 대표적인 단어가 최근 들어 가장 흔하게 듣는 ‘녹색’이나 ‘친환경’이다. 멀쩡한 산을 깎아서 흉물스럽게 세운 태양광 발전기나 국토환경성 평가 1등급 용지에 세워진 풍력발전기, 무려 몇 백만㎾ 규모의 조력발전소 건설사업이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이라는 이유 때문에 ‘녹색’ 사업으로 추진된다. 또 1만년 이상, 아니 독일에 따르면 10만년 이상,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쏟아내는 원자력을 저탄소라는 이유로 ‘녹색’ 에너지라 부른다. 이렇게 되면 녹색과 친환경이 무슨 의미인지 가늠하기 어렵게 된다.

이런 언어도단의 백미는 4대강 사업이다. 정부는 이 사업을 4대강 ‘살리기’ 사업이라 이름 지었다. 16개나 되는 댐을 강 본류를 잘라 줄지어 세우고 강바닥을 평평한 모양이 되도록 모래와 자갈, 암반을 파고 깎아내면서 이를 강을 살리는 일이라 한다. 영어로는 이 ‘살리기’를 ‘restoration’으로 적고 있다. 이는 복원이란 말로 ‘원래대로 회복한다’는 뜻이다. 정부 스스로 국토개조사업이라 부르며 강의 형태를 무자비하게 바꿔 버리면서 이를 복원이라 하니 이쯤 되면 정말 ‘개념 상실’이다.

이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홍수 위험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은데도 재해예방사업으로 분류하여 예비타당성 검토도 거치지 않았다. 내용이 어떻든 홍수와 가뭄 같은 재해를 예방할 목적으로 한다고 내걸면 재해예방사업이 되어 버린다. 보란 이름도 그렇다. 원래 보(洑)란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하여 소규모의 둑을 쌓고 흐르는 냇물을 막아 두는 저수시설’을 말한다(네이버 백과사전). 따라서 이런 ‘원래’ 개념에 따르면 낙동강의 경우 평균 11.2m, 한강의 경우 평균 7.4m 높이인 현재의 ‘보’는 더 이상 보가 아닌 것이다. 영어로는 물을 가두는 시설물은 모두 댐(dam)으로 적는데 4대강 사업에 등장하는 보는 영어로 weir라 적고 있다. weir는 둑 가운데 일부를 터서 물을 흘러 보내는 시설이나 유량을 계산하기 위하여 일정한 모양의 홈을 파서 높이를 재는 시설물을 말해 지금 건설하고 있는 보와는 사뭇 다른데도 말이다.

이렇듯 말과 그 말에 담긴 뜻이 일치하지 않을 때, 말이 애초의 가치를 담지 않을 때 우리는 혼란스럽다. 정책이나 국가사업과 관련된 이런 혼란은 개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적 혼란의 원천이 되며 결국 두고두고 우리에게 경제적 부담을 야기하게 된다. 재생가능에너지가 녹색 가치를 구현하려면 입지지역이나 시설규모의 문제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고 녹색이라 말할 수 없는 원자력을 녹색으로 포장하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이 정말 살리기 사업이 되려면 강을 죽이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동화에서처럼 벌거벗은 줄 알면서 벌거벗었다고 말하지 않고 전도된 가치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전도된 가치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무얼 택하는 것이 올바른 걸까?


이 글은 <경향신문>(2010년 9월 17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처음 작성: 2010-09-28 15:25:41 / song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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