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2011-12-27 15:58:32 / songdw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에너지전환의 과제

강윤재(에너지전환 부대표)

2011년 10월 21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5개월이 지났다. 사고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신문이나 TV에서는 더 이상 뉴스를 접하기가 어렵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신문 칼럼에서 언론의 역할 부재와 무관심을 질타하면서 한 걱정을 토로하셨다. 정말 큰 일이다! 방사능이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우리의 눈과 귀인 언론은 나몰라라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어쩌면 일본의 원전사고가 더 이상 우리 눈과 귀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으니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그런 일에 신경 쓸 여력이 어디 있냐고 여길지 모른다. 혹은 위험하지만 정부와 원전전문가들이 안전에 각별히 신경 쓴다고 하고, 더 이상 대안도 찾기 어려우니 불안하기는 하지만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한 발짝 물러서 있는지 모른다. 다시 한 번 관성과 기득권 세력의 힘이 얼마나 센지 절실히 느낀다.

우리나라 원전정책은 일본의 원전사고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민들이 아무리 외쳐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노후화되어 사고 위험이 높은 원전들도 별다른 조치 없이 수명연장을 허락해주고 있고, 발전소 건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릇 타산지석이라고 이웃나라 일본의 엄청난 비극으로부터 뭔가 배워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오히려 ‘한국형’ 원전의 우수성을 알려서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는 기색이다. 이런 식이라면 설령 우리나라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한다고 해도 정부는 원자력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그대로 밀고나갈 공산이 크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럽의 두 강국인 프랑스와 독일은 정반대의 길을 갔다. 프랑스는 원전의 길로, 독일은 탈(脫)원전의 길로 갔다. 그 결과, 프랑스는 현재 원전대국으로 발돋움했고, 독일은 2022년 탈원전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핵산업계는 프랑스를 치켜세우며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하지만 프랑스 국민은 핵사고의 위험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독일은 왜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일까? 별도의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독일 국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의지가 탈핵의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두 나라의 에너지정책은 극단적으로 갈리게 되었다. 핵위험에 떨어야 하는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은 이제 핵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 계획과 실천방안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덴마크에는 원전이 없다. 하지만, 1970년대의 오일쇼크 때 덴마크에서도 모두 15기의 원자력발전소를 통해 전력문제를 해결하려던 시도가 있었다. 원자력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불붙었고, 그 과정에서 원자력발전정보조직(OOA)과 같은 환경 시민단체들, ‘대안에너지 시나리오’의 작성을 주도한 물리학자 닐스 마이어 박사와 같은 양심적 과학자들, 시민들의 적극적 관심과 참여 등이 어우러지면서 원자력정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덴마크의 역사도 원자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탈원전에 대한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탈원전은 왜 어려울까? 특히, 원전의 수가 많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프랑스나 일본, 미국 등에서 탈원전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나는 기술시스템이라는 개념으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눈이 쌓인 산 위에서 천천히 뭉치기 시작한 눈을 생각해보자. 처음에 눈이 뭉쳐지기 시작할 때는 힘이 약할 뿐만 아니라 작은 가지에 걸리기라도 하면 금방 멈추고 만다. 하지만, 일단 뭉쳐진 눈이 구르기 시작하면 덩치가 점점 켜져서 웬만한 나뭇가지나 바위에도 멈추지 않을 뿐더러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이렇게 되면 구르는 눈덩이를 멈춰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원전도 비슷하게 생각해볼 수 있다. 원전이 많지 않을 때는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당장 멈춰 세운다고 해도 전력수급에 큰 문제가 없으니 국민들도 별로 불안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전의 수가 많아지고 전력공급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원자력으로 먹고 사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원전을 멈춰 세웠을 때 감수해야 할 불편도 커진다. 일단 원전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원전의 사회적 영향력도 급속히 커지고, 그렇게 되면 웬만해서는 원전을 없애기가 힘들어진다. 향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우리나라 원전의 수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그 결과 우리는 프랑스처럼 원전이라는 낭떠러지를 향해 갈 수밖에 없는 상태로 내몰릴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원전은 기술시스템의 관점에서 볼 때,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원자력과 관련된 시설들이 점점 더 많이 세워질 것임을 말해준다. 원전이 많아지는 것은 물론 핵폐기장도 중저준위 시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준위 시설도 세우려 할 것이고, 기회가 된다면 재처리에도 적극 나설 것이다. 또 다른 형태의 원자력 이용도 시도할 것이다. 최근에 서서히 거론되고 있는 토륨이나 일본의 몬주와 같은 고속증식로가 그런 예이다.

이런 까닭에 탈핵의 의지와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바로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 탈핵의 꿈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독일과 프랑스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탈핵의 의지를 분명히 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정치적으로 그런 대안을 관철해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한편, 원자력을 과도기 기술로 정의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를 충분히 발전시키기 전까지는 원자력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는 분들이 있다. 일견, 매우 현실적 대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기술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공상에 불과하다. 원자력을 발전시키는 한 재생가능에너지가 설자리는 없다. 원자력에너지와 재생가능에너지는 서로를 보완하는 기술시스템이 아니라 서로를 배척하는 기술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핵에 대한 선언이 먼저 이루어지고, 장기적 전환을 위해서 현재 가동되는 원전 정도는 일정한 기간 동안 유예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이런 유예는 장기적 에너지전환의 일부로서 고려될 때만 의미를 갖는다. 흔히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이 있듯이 당장의 편리함을 쫒다가는 프랑스처럼 영영 탈핵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탈핵과 탈원전에 대한 의지가 먼저다. 그리고 그런 의지를 현실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히 의지를 갖는 것보다 에너지정책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이 더욱 요원하고 힘들다.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고, 함께 힘을 합쳐서 이루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단체의 노력과 함께 다른 단체와의 협력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전환>은 작년 7월부터 탈핵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여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지방강연을 개최하고, '수요탈핵교실'을 여는 등 탈핵과 탈원전 의지를 확산하는데 주력해오고 있다. 이런 노력에 ‘시나리오 워크숍’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정책의 지표를 세워나가려고 한다. 탈핵의 필요성은 새로운 대안이 구체화될 때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수요탈핵교실과 시나리오 워크숍은 <에너지전환>의 과제를 위한 쌍두마차와 같은 활동이다. 이렇듯 중요한 활동에 회원 여러분의 더 많은 관심과 적극적 참여를 당부 드리는 바이다.

(강윤재/ 에너지전환 부대표)

처음 작성: 2011-12-27 15:57:22 / song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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