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정: 2013-02-12 12:12:28 / songdw

시민이 만들어가는 탈원전 사회

박진희(에너지전환 대표)

2012년 7월 10일

지금 일본은 역사적인 실험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5월 5일 일본은 54기의 원전 가동을 모두 멈추어 핵발전에서 생산되는 전기 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에 전체 공급량의 27%를 차지하고 있던 핵발전 전기 공급이 현재 전면 중단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에서 핵발전이 가동된 이후로 한번도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 바로 이웃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핵발전이 없으면 당장 모든 일상이 마비될 것 같은 우리의 상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에서의 일상은 큰 틀에서 변화없이 유지되고 있다. 공장이 가동을 멈추었다거나 도시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물론,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기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기업은 그동안 잘 사용하지 않던 자가발전기를 돌리기 시작했고, 자가발전 설비가 부족한 곳에서는 부랴부랴 설비 확충에 힘쓰고, 전기를 줄일 수 있는 부문에서 최대한 줄이려는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했다. 시민들 역시 전력 제한으로 다가올 무더위에 대한 자구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에어컨 대신에 선풍기, 집안 조명을 LED로 교체하기, 냉각 침구, 습기를 흡수하는 의복류 착용 등으로 전력 부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나 원전 관련 업계에서는 여름 절정기에 극심한 전력 부족이 발생할 것이라며 정비가 끝나는 원전들을 재가동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와 달리 시민들은 이번 가동 중단을 계기로 탈원전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에 더 동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시민들의 탈원전으로의 행보는 이미 지난해부터 시작되었다. 지난해 일본 정부와 전력당국은 도쿄 등 수도권과 원전사고가 발생한 도호쿠 지역에 기업과 상업용 빌딩을 대상으로 15% 절전을 의무화하였다. 그런데, 의무 대상이 아닌 가정집에서 이 절전 의무에 적극 동참하면서 절전율 21%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시민들 스스로 절전에 동참하며 원전 가동 중단을 앞당기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나고야 지역에서는 하마오카 원전이 전면 정지한 이후로 원전 추진과 반대 양쪽의 뜻있는 시민들이 2012년 3월에 지역에 맞는 전력공급과 소비에 대해 사업자와 함께 생각하자는 취지에서 '중부 에너지시민회의'를 발족하여 에너지 자치에 나서기 시작했다. 동경에서는 탈원전 국민투표를 위한 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이 성공을 거두어 조례 제정을 앞두고 있다.

한편, 시민사회의 이런 탈원전 움직임은 지자체장을 움직여 지난 4월 28일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탈원전을 지향하는 수장회의’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총회에서 “새로운 원전을 만들지 않고, 가능한 빨리 원전 제로를 실현한다. 지역에서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추진할 구체적 정책을 작성한다”는 결의를 채택하기도 했다. 이들 지자체장들의 움직임은 정부와 원전 관계자들의 원전 재가동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탈원전 의지로 일본 시민사회는 정부의 바람과 달리 여름의 전력부족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본격적인 원전 제로 사회를 준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절전의 경험과 올해 탈원전 의지가 결합하여 일본 시민사회가 어떤 ‘초절전’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일본을 교훈삼아 시민들의 합의로 탈원전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독일에서도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는 정책 담당자들과 달리 시민들이 탈원전을 이끌고 있는 형국이다. 환경부 수장이 바뀌면서 탈원전 정책의 세부적인 밑그림이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고, 자금 지원을 둘러싸고 담당부서들 간에 공방이 오가고 있는 사이 시민들은 에너지 협동조합을 결성하며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에 나서고 있다. 1999년 그린피스가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여하기 위한 그린피스 에너지 협동조합(Greenpeace Energy eG)을 결성한 이후로 독일에서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어 태양광, 풍력 발전소 건립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협동조합 운동은 2008년에 이미 247개에 달했으나 2010년과 2011년 2년 동안 339개가 더 결성되어 2011년 현재 586개에 이르게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2011년 한 해 동안에만 150개가 결성된 것이다. 이들 협동조합의 80%가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설치해서 전기를 생산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남 헤센 주의 슈타르켄부르크 에너지 협동조합은 380명의 조합원이 내는 조합비로 2011년 12월에 2MW 풍력발전기를 설치해 전력망에 연계하였다. 협동조합에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전기를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소비자 협동조합들도 존재한다. 이들 협동조합 결성이 2012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어 바야흐로 독일은 현재 에너지 협동조합의 붐을 맞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결사의 형태로 에너지 협동조합이 늘어나면서 독일은 2020년 재생에너지의 전력 비중 40%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에너지 협동조합의 탄생으로 시민들은 이제 더 이상 소극적인 전기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 탈바꿈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전력정책에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되면서 에너지 거버넌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고 독일이 탈원전으로 가는 길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탈원전은 이렇게 시민들의 손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작성: 2013-02-12 12:11:31 / song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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